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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클립] 탕자의 비유,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탕자의 비유는 보통 둘째 아들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둘째 아들뿐만 아니라 첫째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 첫째 아들은 아버지 곁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면 첫째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아버지를 떠나지도 않았고, 명령을 어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아버지를 섬기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돌아온 동생을 환대하는 아버지를 보며 화를 내고 분노합니다.

심지어 아버지께 따지며 ‘나의 동생’이 아니라 ‘아버지 당신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아버지 곁에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멀어져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동생이 아버지께 유산을 요구하며 받았을 때

그도 동일하게 아버지께 유산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누가복음 15장의 시작을 보면,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오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먹는다.”


바로 이 반응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이야기는 세리와 죄인을 향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 즉 “첫째 아들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이야기였습니다.


돌아온 사람을 기뻐하지 못하고,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 비유의 청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둘째 아들만이 아니라 첫째 아들의 마음까지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두 아들 모두를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을 환영하셨고, 첫째 아들에겐 따뜻한 마음으로 ‘얘야’라며 타이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러한 분입니다. 사랑으로 품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분,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먼저 품어주시는 분,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향해 “얘야”라고 부르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다시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으로 부르시는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을 귀히 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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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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